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구(출)하기

에스티마님의 "프로야구 선수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라는 글에 200% 공감한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는 그다지 많은 얘기가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고는 소프트웨서 산업 육성이라는 것이 이루어 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프트웨어 산업"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니까. 좋은 야구 선수가 없으면서 그 야구 리그가 성공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많은 분들이 아이폰의 성공을 스티브 잡스에게 돌린다. 나도 그 부분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된 부분은 애플에는  iOS를 만들 수 있는 실력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iOS의 기반이 된 Mac OS를 만들 수 있는 실력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iOS나 Mac OS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나로호 같은 위성 로켓만 만들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위성 로켓보다 제대로 된 OS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때문에 iOS나 Mac OS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 천하의 스티브 잡스라도 동남아시아의 어떤 나라나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는 Mac OS나 iOS를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였더라도 어려웠을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아이디어가 훌륭해서 성공한 것 같은 제품들도 그 이면을 보면 대단한 기술력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 기술력은 소프프웨어 엔지니어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럼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대우를 어떻게 하면 개선하고, 그럼으로써 좋은 엔지니어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까?

먼저 안 될 것 같은 방법들.

첫째, 기업들이 이런 문제 의식들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개선 한다. 월급 더 안 줘도 대는데 자발적으로 더 많이 준다. 야근 더 시킬 수 있는데 자발적으로 안 시킨다.

둘째, 정부가 기업들에게 대우를 개선하라고 시킨다. 압박한다.


이번에는 될 것 같은 방법들.


첫째, 제대로 된 경쟁 시장을 만든다.

실리콘 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대우가 좋은 것은 기업들 간의 경쟁이 아주 심하고, 갈 수 있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고 싶은 회사도 적고, 경쟁도 별로 심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경쟁 시장을 만들까? 정부가 나서서 경쟁 기업이라도 많들어 줘야 하나?

정부가 심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정책 집행 과정에서도 경쟁 시장 형성의 관점을 우선 순위로 둔다면 경쟁 시장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실리콘 밸리를 망하게 하는 방법 - 첫번째""잃어버린 한국의 실리콘 밸리를 찾아서"에서도 약간 다루었고, 앞으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글을 쓸 예정이다.)

또 다른 부분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에게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마치 물고기에게는 물과 같이 가장 중요한 환경인데, 이 환경이 우리나라처럼 열악한 곳도 별로 없다. 이 부분도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환경 개선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음에 자세히 쓸 예정이다.)


둘째, 동종 업계 전직 금지 규정을 폐지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대우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이직이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글에는 상당히 많은 전직 마이크로 소프트 엔지니어, 야후 엔지니어들이 일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 전직 구글 출신들일 것이다 (관련 다이어그램). 이렇게 이합 집산이 매일 같이 이루어 지기 때문에,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가 상향 평준화 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옮겨 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다. 엔지니어들에게 "동종 업계 1년간 전직 금지 규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퇴직 후 일 년 간 동종 업계로는 이직을 할 수 없다. 그럼 동종 업계에 취직할려면 집에서 일 년간 놀 다 취직을 해야 하나?? (실제로 이런 분들도 있다.) 동종 업계로 이직을 못하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치킨 가게라도 하라는 걸까?

이 규정의 취지는 기업이 열심히 투자해서 기술 개발한 것을 다른 기업이 부당하게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자는 나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특허나 지적 재산권, 문서, 소스 코드 등으로 얼마든지 보호할 수 있다. 문제는 엔지니어가 일하면서 머리속에 쌓은 지식 조차 그 회사의 귀속물로 본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합당한가? 그러면 변호사나 의사들도 다른 로펌이나 병원으로 갈려면 일 년을 놀아야 하나? 아님 외과 의사가 이직을 할려면 안과로 이직해야 하나?

적어도 미국에서는 엔지니어가 일하면서 머리속에 쌓은 지식, 기술에 대해서는 본인의 것으로 인정한다.

이 규정이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전문가로 대하지 않고, 회사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의사나 변호사같은 전문가들을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을까?


셋째, 소프트웨어 개발 발주사 선정시 회사의 역량을 충분히 반영한다.

우리나라 웹사이트들 쓰다 보면, 사용성 안 좋고, 자주 다운 되고, 속도 느린 사이트들을  꽤 접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왜 그럴까 항상 궁금했었다. 그러다가 이런 사이트들이 갑을병정을로 이어지는 엄청난 하청, 재하청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는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트웨어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하청에 재하청을 주겠다는 개발사에 더 싸다는 이유로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중요한 변호 업무를 맡기거나, 중요한 수술을 맡기면서, 하청에 재하청을 주겠다는 로펌이나 병원에 그 업무를 맡길 수 있을까?

이렇게 하청, 재하청을 주는 구조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열악한 환경에 빠뜨리니까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본 주의 사회에서 이렇게해서라도 품질이 제대로 나와 준다면 냉정하게 말해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딱히 얘기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하청 방식으로 개발된 우리나라의 많은 사이트들을 보면 사이트들의 질이 상당히 낮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정부 사이트끼리, 은행 사이트들 끼리, 신문사 사이트들 끼리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끝으로, 세 가지를 얘기했지만, 굳이 꽂으라면 첫번째, 경쟁 시장 형성, 생태계 복원이 가장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그 동안 우리들이 실수한 부분도 많고, 고침으로서 정말 좋아질 부분이 정말 많다.  부디 정책 집행 하는 분들이 혜안을 가지고 해 주시기를 빈다.

그리고 각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정말 전문가로 생각하고 그에 맞게 대해 주시기를... 이라고 썼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까지 바라지도 않고, 한 사람의 인격으로 (한 사람의 가장으로, 누군가의 엄마 아빠로) 대해 주시기를... 이라고 써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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