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왜 아이폰을 만들지 못했을까?

2년 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나름 안정된 한국 생활을 뒤로한 채, 나와 아내는 갓 돌을 지난 아이를 데리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머리속에는 한 가지 의문을 품은 채. "왜 삼성은 아이폰을 만드는 것이 이리도 힘든데 애플이나 구글은 쉽게 만드는 걸까?"
2년이 지난 지금 많은 부분에서 해답을 찾았기 때문에, 그 동안 보고 배운 것들을 소프트웨어 산업에 종사하는 동료, 선후배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축구에서 K리그와 프리미어리그 만큼의 차이가 한국과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산업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실리콘밸리가 좀 더 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차이가 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던 것 같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나 조차도 "개발자 능력이 거기서 거기지"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까지는 했던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백명을 모아서 안드로이드를 만들라고 하면 백번에 구십번은 안드로이드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한국에서 비슷한 시도를 했을 경우 백번에 열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타고난 개발자 자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의 경우 최고의 동료들과 최고의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쉽게 자신의 최대 역량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박지성, 이청용, 박주영이 워낙 성실하고 열심히 하니까 K리그에서도 잘 할 수 있었겠지만, 유럽 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로 까지는 성장하기가 어려웠거나, 된다고 해도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점과 비슷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은 굉장히 많은 요소들에 의해 좌우 된다. 생태계적인 요소, 제도적인 뒷받침 등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고, 이러한 부분 역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축구에서 개개인 선수들의 실력이 게임의 승패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듯이 (2010년 월드컵에서 해외파 없이 한국이 그 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역량 차이는 게임의 승패를 결정짓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 역시 프리미어리그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일단 전 세계에서 뛰어난 개발자들이 많이 모인다. 실리콘밸리는 미국에 있지만, 인도, 중국, 유럽 등 온 세계에서 뛰어난 개발자들이 모여 든다. 지리 교과서에서나 들어 보았던 나라 출신들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파키스탄, 이란, 스리랑카 등등. 또한 이렇게 모인 인재들이 그들 사이에서의 협업과 경쟁을 통해서 훨씬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실제로 나의 경우에도 이전의 한국 직장에서 7년 동안 풀지 못했던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지 짧은 기간안에 많이 배웠다.

실리콘밸리를 제외하고 소프트웨어가 강한 나라는 어디일까? 인도가 뛰어 나고, 그 다음으로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중국, 그리고 이스라엘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실리콘 밸리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 중 이들 국가 출신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리콘 밸리에서 경험을 쌓은 후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수도 상당하다. 이렇게 돌아간 사람들에 의해서, 또는 여전히 실리콘밸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도움, 영향력에 의해서, 쉽게 자국 소프프웨어 산업 역량을 끌어 올릴 수 있게 된다.

지금도 한국에 있는 예전 직장 동료들이 새벽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일하는 것을 트위터 등을 통해서 보고 있다. (이들이야 말로 한국을 먹여 살리는 애국자들이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이들 중 핵심 인력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많이도 말고 2년 정도만 일해 보았다면,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더 쉽게 풀 수 있을 텐데, 그리고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전 직장에서 별처럼 빛나는 재능을 가진 후배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들의 최고 역량의 작은 부분만이 개발되고 활용되고 있었다. 그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일해본다면 훨씬 대단한 선수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축구를 잘 하면 프리미어 리그에 가서 세계적인 선수가 되려고 노력하고, 야구를 잘하면 MLB로 가는 것을 고려하듯이, 한국의 우수한 전산학도들이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도 실리콘밸리 진출을 고려해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2 comments:

Unknown said...

Good for you!!! I wish your story can inspire many young people just like you did to me.

aterilio said...

해가 갈수록 "좋은 개발문화"를 경험하고 성장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